한국장애인개발원 Korea Disabled people's Development Institute

구독신청

함께하면

이슈 칼럼

장애인 인권 존중의 창의적 방향성

글. 조효제 교수

장애인 인권 존중의 창의적 방향성1.jpg

장애인 인권 담론의 발전

장애인에 대한 인권 담론은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이 발전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장애인을 자선의 대상으로 보던 관점에서 권리의 보유자로 보는 관점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이나 유리한 정책을 일종의 시혜라고 생각하는 시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장애인이 권리를 가진 주체라고 전제하면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적극적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러한 인권 패러다임에서는 장애인이 겪는 각종 불편과 불이익이 장애 상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고, 그런 불편과 불이익을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된다. 장애인의 인권 패러다임은 출발점이 다르더라도 결과를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 차별시정의 지향을 가진다.
또한, 장애인이 겪는 불편, 불이익, 차별은 단순한 권익의 침해라기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대명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장애인 인권 담론의 특징이다. 이렇게 보면 장애인의 권리(rights)는 단순한 이익(interests)을 넘어 인간의 존엄에 기초한 ‘정당한 이익’(rightful interests)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장애인 인권 확대되었지만, 동반되는 문제점

장애인 인권의 발전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방식의 진화상을 보여주며, 장애 개념이 계속 확장되어 온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신체적 장애 중심으로 인권이 제기되었다면 발달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인지-심리적 영역으로 인권이 넓어졌다. 또한, 장애인 내에서 젠더적 시각이 도입된 것도 중요한 발전이다. 국제장애권리협약에서 젠더에 관한 조항이 포함된 것은 한국 장애 운동의 활약에 크게 힘입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선진국과 개도국의 장애 이슈에 특징적인 차이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렇게 장애인 인권이 확대되어 왔지만, 앞에 등장한 이슈가 완전히 해결된 후 다음 단계의 이슈가 등장한 것은 아니다. 선행 이슈 내에서도 완결되지 못한 각종 문제가 계속 등장하고 그것들이 후행 이슈들과 중복되면서 장애 인권 담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장애인, 사회혁신 전문가라는 발상의 전환

장애인의 인권 존중은 계속 발전해야 하지만 그것에 더하여 한 가지 창의적인 방향성을 고민해 보면 좋겠다. 장애인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각종 불편과 문제를 인지하고 감각하는 능력 자체를 일종의 전문성으로 간주하면 어떨까. 차별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이 있다. 차별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차별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차별을 제일 잘 인지하고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은 차별 당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 점에서 당사자성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이런 당사자적 인지력과 감수성을 전문성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인지력과 감수성은 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를 인권친화적으로 만든다. 건축 설계, 도시 계획, 인터넷, 교육, 행정, 교통, 커뮤니케이션, 기후 위기 대응에 이르기까지 각종 분야에서 장애인이 예민하게 찾아낼 수 있는 위험 요소는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점을 식별, 탐지하고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사회혁신의 전문가로 인정, 우대, 보상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장애 인권 존중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가 전문가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사회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장애인이 단순히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사회발전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면 그것은 장애인 인권을 업그레이드하는 획기적인 방향성이 될 것이다. 장애인이 주도하는 사회혁신을 위해 리빙랩과 같은 정책 실험을 지원하고, 그것들을 이행할 방안을 고민해 보면 좋겠다. 장애인의 인권 존중이 건설적인 사회변화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 조효제 교수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이며, 현재 한국인권학회 회장이다. 저서로는 《인권 오디세이》, 《인권의 최전선》,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