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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행복과 익숙한 불행 사이

글. 방경은 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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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사라는 직업을 알렸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주변의 반응은 ‘정말 힘드시겠어요.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매일 들으시니까요.’입니다. 이 표현은 주로 심리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지치고 피곤하다는 생각과 주변에서 마음이 힘든 이들과 지내면서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고단했던 개인적 경험이 덧붙여져서 하게 되는 표현이곤 합니다.

용기를 낸 사람들, 내담자

상담할 때 상담 받는 사람을 가리켜 ‘내담자’라고 합니다. 이는 내담자의 한자 표현인 來談者로 ‘직접 와서 상담에서 이야기한다’라는 뜻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심리 상담을 위해 상담소에 오는 이들은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라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본인의 어려움을 알고 변화를 위해 큰 용기를 낸 사람들입니다. 낯선 상담자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자체가 큰 용기입니다. 변화를 위해 찾아온 사람을 만나 더 좋은 삶을 꾸려가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심리 상담입니다. 직업적 고단함을 먼저 보는 이들에게는 ‘힘든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상담사 입장에서는 ‘변화’라는 측면에 더 큰 무게를 둡니다. 그래서인지 ‘상담은 내담자가 보이는 용기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고, 무대의 유일한 관중은 상담사’라는 심리치료사 어반 얄롬(Irvin Yalom)의 문장에 더욱 공감합니다.

변화를 위한 첫걸음

변화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어 ‘변화를 위해 큰 용기를 낸’ 내담자가 갖춘 동기(motivation)가 필요합니다. 상담사와 내담자가 처음 만나는 시간에 ‘어떻게 지금, 이 시점에 상담실에 오게 되었나요?’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심리적 어려움을 들었을 때 하루 이틀 새 고민한 내용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낯가림이 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기질을 지녔다면 성장 과정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회생활 상황에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불안하고 긴장해서 배가 아프고, 등교 거부를 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니 관계 유지를 하지 않으면 친구들과도 점점 소원해지는 패턴으로 굳어집니다. 구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알려야 하는 데 낯가림과 수줍음이 많다면 면접에서 좌절이 반복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런 어려움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에 자기 방 안에 고립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수년 동안 이러한 패턴을 반복하고 상담실에 찾아오면 상담사는 묻습니다. ‘어떻게 지금, 이 시점에 상담실에 오게 되었나요?’하고 말이죠.


대부분 내담자는 지금껏 힘겹게 삶을 이어 왔지만 반복되는 어려움이 막막해서 오게 되었다고,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자기 삶에 있어 수면 위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찾아왔을 겁니다. 여기에 ‘더 나은 방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찾아온 상담실이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변할 수 있기는 한 걸까?’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에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상담사들은 전제합니다.
‘변화가 안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면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행동 문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 시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노력했지만 수없이 좌절하고 지속되지 못해 회의적인 태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문제가 사라지면 어떤 삶을 살기를 가장 원하나요?”하고 묻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누구나 변화하고 싶으면서도 또 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쉽게 선택한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됩니다. 스스로 질문해보세요. ‘나는 낯선 행복과 익숙한 불행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일까?’하고 말입니다.
저는 제 용기가 부족할 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배웁니다.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저도 변화할 수 있을까요?’ 하며 묻는 그들 얼굴에서 말입니다. 바라건대 많은 독자분들이 낯선 행복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가 있기를.

방경은 상담심리사는 한국심리학회 공인 상담심리사로 대학 상담실에서 경력을 쌓고 현재는 상담센터 ‘마음의 주인 심리상담연구소’에서 상담하고 있다. 외상(trauma) 이후의 삶에 대해서 관심 갖고 연구하였고 심리 상담 및 개인의 삶에서도 지속되는 삶에서 새로운 가치 추구로 의미있는 성장을 이루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