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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옮겨 간 나의 영혼들아

글. 김용길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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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 2023년 11월 1일 보도) 아영이는 2019년 신생아실에서 머리를 다쳐 두개골 골절상을 입고 3년간 의식불명에 빠졌고 그 후 심장박동이 떨어지며 뇌사 상태에 빠졌다. 아영이는 심장, 폐장, 간장, 신장을 또래 아이 4명에게 선물한 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연합뉴스 = 2023년 10월 23일 보도) 제빵사를 꿈꾸던 20대 여성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뇌사상태가 됐다. 그 후 6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 씨는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양측 폐장과 간, 신장을 기증했다.

일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2008년 국내 개봉된 미국영화 <세븐 파운즈 Seven Pounds>는 속죄의 주제로 장기기증 스토리를 다뤘다. 윌 스미스가 주인공 벤 토마스 역을 맡았고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이 연출했다. 미국 MIT 공대를 나와 유명 항공사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벤 토마스(이하 벤)는 젊은 아내와 부러울 것 없는 안온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내와 저녁 데이트를 마치고 함께 귀가하는 길. 운전 중에 휴대전화 통화에 신경을 쏟다 커브 길에서 치명적인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전방주시 태만으로 중앙차선을 침범하고 건너편 승합차와 충돌한다. 아내와 피해 차량 탑승자 6명 합쳐 모두 7명이 사망한다. 벤 토마스만 살아남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사고 후 내내 지옥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양심의 가책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속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폐인이 돼 망연자실하지만 바로 사고를 저지른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다. 스스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무고한 6명의 승합차 피해자 유족들 또한 비참하다. 현실적으로 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죄책감에 시달리고 절망 속을 허우적거리던 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속죄를 결행한다.


힘겹게 살아가는 7명의 인생에 희망을 주고자 한다. 7명의 선한 자(Good Man)를 찾아 나선다. 척수 이식이 간절한 어린이, 간이식이 절실한 하키팀 감독, 시각장애로 앞을 보지 못하는 피아니스트 등 장기기증을 통해 생명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자들을 선택한다. 자신의 폐마저 누군가에게 기증될 것이다. 벤 토마스는 국세청 직원으로 위장하여 그들과 직접 대면해본다. 그들 모두는 삶과 죽음의 경계, 절망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


벤은 본인의 처지를 숨기고 장기 수혜 예정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에밀리를 만난다. 에밀리는 막대한 병원비에 파산 직전이다. 벤은 외롭고 힘든 에밀리를 간병하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에밀리의 목숨은 시시각각 경각에 달려있다. 심장이식 외엔 치료 방법이 없다. 에밀리를 위해 벤은 마침내 결행한다. 911에 전화를 걸어 자살자가 발생했다고 신고한다. “희생자가 누구냐”는 재난신고 접수자의 물음에 “접니다”라고 말하고 얼음을 가득 채운 욕조로 걸어간다. ​


어린이 합창단 공연이 열리고 있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에즈라는 각막을 이식받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 멋진 피아노 반주를 마쳤다. 저쪽에서 훨씬 건강해진 표정의 에밀리가 걸어온다. 마주 선 두 사람은 초면이지만 직감한다. 벤의 소중한 선물을 나눠 가진 두 사람.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까. 벤의 심장을 가슴에 간직한 에밀리는 에즈라의 두 눈에 깃든 벤의 눈동자를 본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벤의 눈을 간직한 에즈라는 에밀리의 가슴 속에 깃든 벤의 심장을 느낀다.


장기기증은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행동이다. 또 장애인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거룩한 결정이다. 장기이식은 조직 또는 장기의 파손된 기능을 회복하고 치료할 목적으로 조직 또는 장기를 옮기는 치료법이다.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골수 및 각막 등 7종류다. 한국 의료계의 장기이식 의료기술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최근 장기기증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인식 변화는 크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시민이 가족들의 결단으로 장기기증을 선택해 사회적 귀감이 되는 뉴스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즉 희귀한 뉴스가 아니라 격려와 희망의 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장기이식 결정이 남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감정 이입되는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다.


39년간 대한민국 소록도의 한센인들을 돌보며 헌신하는 삶을 살다가 2023년 9월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88세의 일기로 선종한 마가렛 피사렛(Margaritha Pissarek) 간호사의 시신도 본인의 뜻에 따라 오스트리아 의대에 기증됐다. 고인의 주검은 장례 후 대학 의학부 해부학실에 기증됐다. 수녀님의 이타적 의지는 미래를 밝히는 고귀한 실천이다. 사회 공동체를 구할 수 있는 숭고한 의지다.


우리나라 인구 대비 장기기증 희망 등록률은 약 3%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기이식 희망 등록자 수가 적은 가장 큰 이유는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다. 장기기증을 주저하는 이유는 ‘신체 훼손에 대한 거부감’이다. 장기기증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 교육과 올바른 정보 전달 그리고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장기기증을 다루는 긍정적인 미디어 콘텐츠(영화, 다큐, 보도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 김용길 기자는 30년간 뉴스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영화 리뷰집 《태블릿PC에 꼭 담아둘 영화 35》,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