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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렸을 때 필요로 하던 사람이 되어라!

글. 방경은 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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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상담자로서의 인생을 끌어온 동기를 함축하는 한 문장을 고른다면 이 문장이 될 것입니다. ‘네가 어렸을 때 필요로 하던 사람이 되어라!’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사진 한 장으로 이 문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을 보면 두 개의 내가 겹쳐서 떠오릅니다. 현재 시점의 성인인 ‘나’와 불안정하고 혼란한 시기를 보낸 십 대 시절, 청소년기의 ‘어린 나(little me)’의 모습입니다.
사춘기로 접어들던 시기 외환위기를 겪은, 소위 IMF 키즈입니다.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 집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고 어린 저는 불안함과 걱정으로 잠 못 들었습니다. 마음이 캄캄하고 어둡던 시절이라 기억이 거의 없지만 유독 생생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수업 중이면 멍하게 창가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고, 말수가 줄어들면서 또래와 어울리지 않은 채 혼자서 공책에 뭔가를 끄적이는 저의 변화를 유심히 본 학교 선생님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아무 말 못 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언어로 준비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가 눈물로 표현되었습니다. 눈물을 통해 ‘지금 마음이 힘들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사춘기는 오래 머물렀습니다. 머리로는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자책으로 인해 우울함과 미래에 대한 비관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기연민, 분노, 슬픔,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꽉 막힌 터널 같았습니다.


터널 속에 갇혀 있던 나에게 필요한 성인은 곁에서 관심을 주고 마음을 살펴 주며 공감해 주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성인 자아는 완벽한 존재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만하면 좋은’ 정도의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는 영국의 대상관계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이 주장한 것으로 유아의 정서 발달에 있어 어머니(양육자) 역할에 대한 개념입니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를 정의하는 데 있어 그는 ‘완벽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완벽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다고 비판했습니다. “완벽함은 기계에나 해당되는 것”이고, 아이의 욕구를 매번 채워주는 것보다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적절한 만큼의 실수를 통해 좌절을 주는 것이 주체적인 독립성 발달에 있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완벽함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성인 자아가 어린 자아를 기르는 자기 양육의 개념인 ‘충분히 좋은 나(good enough me)’로 확장해 보고자 합니다. 자기 실수에 관용적이고 완벽한 대신에 단점의 모습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성인 자아를 그려서 어린 자아의 옆에 놓아봅니다. 심리 상담을 하면서 성장 과정에서 받았던 상처와 힘든 감정을 한참 쏟아낸 후에 지금의 내가 그때의 연약한 나를 보듬고 안아주는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현재의 성인인 내가 과거 어린 나의 양육자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자신을 양육하는 일에서 자기 내면에 집중하여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거리에서 곁에 있으며 공감하고 안아줌으로써 심리적 성숙을 이룰 수 있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 필요로 하던 사람이 되어라’라는 문장에서 거창한 성취를 이룬 흠결 없는 멋진 어른이지는 않아도 됩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십 대의 내게 필요한 사람은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혹독한 사춘기를 보냈기에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게 된 상담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방경은 상담심리사는 한국심리학회 공인 상담심리사로 대학 상담실에서 경력을 쌓고 현재는 사설 상담센터 <마음의 주인 심리상담연구소>에서 상담하고 있다. 외상(trauma) 이후의 삶에 대해서 관심 갖고 연구하였고 심리 상담 및 개인의 삶에서도 지속되는 삶에서 새로운 가치 추구로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루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