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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윤미(강원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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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뛰어도 제자리

연말이 가까워지면 자책에 가까운 아쉬움과 조급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연초에 계획한 것 중에 이룬 것이 있나 싶어 손가락을 슬며시 펼쳐 보지만 이내 저절로 오그라든다. 이룬 게 별로 없어 부끄러워서다. 이럴 거면 그냥 닥치는 대로 살 걸 쓸데없이 거창한 계획은 뭐 하러 세우고, 또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소문은 냈는지. 이럴 때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조급증이다. 이 조급증은 일시적으로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긴 한다. 남은 달만큼이라도 제발 계획대로 살아보라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창피하지 않겠냐며 나를 독촉하고 몰아친다. 그러나 이 조급함도 오래가진 못한다. 일 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하지 못한 일을 한두 달 사이에 이루겠다는 생각이야말로 과욕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나마 남은 에너지를 조급함에 모두 써버렸더니 연말만 되면 몸은 늘 만신창이다.
결국, 계획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만 더 돈을 모을걸, 조금만 더 많이 일할걸,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조금 더 늦게 잘걸. 어느 것 하나 후회 아닌 것이 없다. 그 와중에 내 옆에 있던 친구와 동료, 후배는 나를 앞서는 것도 모자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속이 쓰리다 못해 아플 지경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는데 도대체 나는 왜 늘 같은 자리, 같은 지위,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밀려나고 잊혀지고 있다는 서글픔을 숨길 수 없다. 정말 나는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두 가지 비기(祕技)가 있으니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오늘의 당신은 어제의 당신보다 하루치만큼 더 많은 경험을 더 했고, 내일의 당신은 오늘의 당신보다 더 많은 걸 느낄 것이 확실하니 말이다. 그것이 경험과 깨달음이 득이 되든 실이 되든, 그 생각이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다. 좋은지 나쁜지, 선한지 악한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하고 생각하고 깨닫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정 없는 결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이기에 실수나 실패는 두렵기 매한가지다. 되돌리기가 가능한 삶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신도, 자연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에게는 위대한 비기(祕技)가 있다. 바로 계획과 기억이다. 우리는 계획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고, 기억함으로써 실패로 인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계획이 주는 기대감과 기억이 주는 자기반성을 에너지 삼아 성취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았던 사람이라면 오늘보다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나는 또다시 내년 계획을 고민한다. 올해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한 번 적어보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기도 한다. 어차피 이렇게 해봤자 반은 포기하고 반은 실패할 계획들이지만 그래도 야심차게 세워본다. 계획을 써보기만 했는데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미래의 내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 연말이 되면 설렘은 지금처럼 또다시 아쉬움과 조급증으로, 후회로 바뀔 테지만,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장윤미 님은 우연한 기회 <디딤돌>을 웹진으로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디딤돌>을 보고 함께 원고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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