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을 위해 희망을 써 내려가다

스물일곱 청춘에 찾아온 시련
평소 책과 글쓰기를 좋아했던 박종언 씨는 대학 졸업 후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스물일곱, 꿈을 가득 안고 오른 유학 생활에서 처음으로 조현병을 마주했다.
“어느 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어요.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당시 옆집이 너무 시끄러웠는데 그게 너무 신경 쓰여 예민해졌다고만 생각했죠.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더 심해졌고 누가 나를 죽일 것 같은 망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무섭고 집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웠어요.”
브라질의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도 박종언 씨의 병을 악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총을 맞아 죽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브라질의 사회 분위기는 연약한 심성을 가진 그가 감당하기에 벅찼다. 그는 유학 생활 내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와 본가에서 1년간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칩거 생활을 했다. 이후 조현병이라는 중증 정신장애진단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입원 치료가 시급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죄송스러워 입원하지 않았다. 병이 심해지면서 직장도 그만두고 10년 가까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폐인처럼 살았다.
그는 담담하게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때가 마흔이었어요. 서울대병원에서 6개월간의 치료를 마치고 정신장애인 공동생활가정에서 6년간 지내며 제 병을 마주하고 치유하기 위해 애를 썼고 지금까지 왔네요”라며 그간의 일을 소회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인식개선을 대변하다
얼마 전 팍팍했던 박종언 씨의 삶에 뜻밖에 위로와 힘이 되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중증 정신장애인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신장애 전문 언론사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과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을 역임하며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인식개선을 위해 일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으로 재직 당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가족뿐 아니라 의료인, 사회복지 종사자, 교수와 연구자, 정책 담당자들과의 인터뷰 기사를 엮어 단행본 <마음을 걷다(고통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출판해 정신장애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알렸다. 한편,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으로서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복지와 주거, 취업 및 당사자 교육을 진행해, 정신장애인의 자립을 도왔다.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활동을 했을 뿐이라는 담백한 수상 소감을 전하는 박종언 씨. 그에게 이번 수상은 자신을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고 있다는 위로와 연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위로를 통해 정신장애인이라는 편견 속에서 다시 버텨낼 힘을 얻을지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죠.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많이 부족해요
정신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 대한 아쉬움
박종언 씨는 그 외에도 정신장애인 비하 보도와 조현병 범죄에 대한 무분별한 보도와 자극적인 콘텐츠를 비판하며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활동을 해왔다. 특히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비하를 유발하는 영화 <F20>의 TV 방영 취소라는 성과를 끌어냈다. 그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화 <F20>의 제작자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알고 있기에 그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는 비정신장애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장애인을 흉기를 든, 사건을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장애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부분 연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대인기피와 피해망상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 범죄율의 0.6% 정도로 미미합니다. 두통이 있으면 약을 먹듯, 정신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현병은 고함을 지르고 이성이 결여된 동물적 행위를 하는 증상으로 생각합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다 이해할 수는 없겠죠.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많이 부족해요.”
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희망이 되다
박종언 씨에게 정신장애인으로서 편집국장과 센터장 역임은 돌고 돌아 마주한 운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박종언 씨는 글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대학 시절에는 단편소설로 학보상, 교지상을 받았었고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을 2회나 수상했다. 또한 조현병 진단을 받기 전에는 신문기자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작가가 된다는 건 가난을 받아들여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에, 애써 글을 피해왔다. 하지만 이제 글은 심연을 걷고 있는 그의 삶을 조금은 가뿐하게 만들어 주는 희망이다.
또한 <마인드포스트>를 창간하기까지 2년 여의 시간 동안 박종언 씨는 적은 월급이지만 돈을 벌면서 어둠 속에서 흐릿한 빛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그는 “정신장애인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일반적인 연봉을 받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저는 주위 정신장애인들에게 늘 말합니다. 아주 적은 돈이라도 일자리가 있으면 일을 시작하라고요. 정신장애인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동시에 노동을 통해 자신이 치유되는 경험을 갖게 되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저는 다행히도 글을 쓰며 저의 삶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글’이 그에 삶에 격려와 힘이 됨을 받아들였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요즈음 박종언 씨는 편집국장과 센터장직을 내려놓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휴식’이라는 선물을 주고 있다. 가끔 자기 전 ‘일찍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내 삶도 조금 더 일찍 안정되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기보다 회피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잘 견뎌준 자신의 현재에 감사하며 너그러워진다.
박종언 씨는 “젊은 시절 고통을 피하면 그 고통이 시간을 넘어 이자가 붙은 청구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온다라는 소설 속 구절이 생각납니다. 결국 제가 다 짊어져야 할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저 역시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정신장애인들도 처음에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을 학대하겠지만 결국 치유의 길로 들어서고 그 모든 고통이 하나의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라며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격려하며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