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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경험하고, 깨닫는 ‘기분 좋은 변화’의 시작

15년차 영어 교사 김헌용
글. 김보람 + 사진. 홍승진
학교 가는 아침, 여느 날과는 다른 설렘이 일었다. 학교에 가는 게 얼마 만인가 생각해 보니 까마득하다. 어린시절 친구를 만나 무엇을 할까 궁리하던 등굣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선생님의 학교 가는 길은 어땠을까. 15년째 학교로 출근 중인 김헌용 교사를 만나 궁금한 질문을 풀어놨다.

최초, 처음 그러나 당연한 선택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헌용 교사는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시각장애인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교사가 된 첫 사례가 바로 김헌용 교사다.
“2010년 3월 1일 자로 교사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쭉 특수학교를 다녔고, 중증 시각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일반학교 교사가 되니 낯선 것이 많았죠.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중증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거든요. 물론 교사라는 직업에 제약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사범대 학과에 입학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교육학과 특수과로 입학해서 영어 교사로 시험을 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굉장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어요. 하지만 저는 그저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 교사를 선택한 것뿐이었죠.”
월드컵 세대로 자연스럽게 축구 열풍을 겪으며 영국 EPL(English Premier League)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에는 자료가 많지 않아 영국 공영방송인 BBC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첫 출근길이 아직도 생생해요. 일반학교에 장애인 교사라는 것이 화제였던 것 같아요. 언론 카메라와 함께 출근했거든요. 출근 자체도 떨리는데, 카메라가 있으니 좀 복잡한 심경이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수업 끝나고 전화로 고생했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수업 하나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국립특수교육원에서 대체 교과서를 제작하지만 15년 전에는 지역복지관에 맡겨 제작하는 수밖에 없어 개학 첫날 제대로 된 교과서 없이 급하게 타이핑해 사용하기도 했다. 이제는 점자 교과서, 점자 정보 단말기, 전자 칠판, 원격 학습 플랫폼 등 다양한 기기를 이용해 수업할 수 있어 많은 부분 개선되었다.
“사실 이런 것들도 코로나19 이후에 많이 보급되었어요. 학교에 와이파이도 설치되었고요. 그전에는 점자책과 점자 정보 단말기를 보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식으로 수업했습니다. 전자 칠판 이전에는 직접 판서도 하고, 보조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수업이야 환경이 익숙해지면서 나아질 수 있는데, 그 외 업무들이 문제였죠. 학교가 저에겐 직장이니까 수업 외에도 다양한 업무들이 있어요. 행정 업무도 있는데, 여기에 사용하는 메신저나 시스템을 전혀 사용할 수 없으니까 매우 힘들었죠.”

변화를 위한 우리의 이야기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춰진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처음이 자신이다 보니 어려운 것투성이였다. 그런 어려움이 모여 ‘한국시각장애교사회’를 만들었다.
“여기 신명중학교가 저에게는 세 번째 학교인데요. 첫 번째 학교에서는 모르는 것도, 필요한 것도 많았고, 우선 학교에 적응하는 데 급급했어요. 그래서 주변의 시각장애인 선생님들과 정보도 나누고 친목 모임으로 시작한 것이 ‘한국시각장애교사회’였고요. 수업을 위한 기기 대여라든지 교재 개발도 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첫 번째 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 구룡중학교에서부터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당연히 혼자만의 시간은 아니었다. 그사이 늘어난 장애인 교원과 함께 교육 현장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2019년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 출범되었다.
“서울에 장애인 교원이 5천 명 정도입니다. 그중 4천 명가량은 경증장애인이고, 천 명 정도가 중증장애인입니다. 저희는 모든 장애 유형을 아우르는 단체로 설립되었어요. 세계적으로 모든 장애 유형이 소통하는 커뮤니티는 드물다고 들었는데, 아주 뿌듯합니다.”
김헌용 교사의 도전은 ‘장애인 교원 인사 관리 안내서’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17개 시도교육청에 배포되며 의미 있는 변화를 시작했다.
“이렇게 실질적인 변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여전히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이 많아요. 청각장애인 교원들이 수어나 문자 통역을 받지 못하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저희가 할 일이 많습니다.”

장애의 다른 이름, 교육

교육 현장의 환경 개선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을 굳이 하지 않아도 학교의 변화를 통해 아이들이 배우길 원한다.
그가 구룡중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은 그에게 학교생활에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물어왔고, 그는 출근길에 점자 유도블록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두 달쯤 흘렀을 때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점자 유도블록이 설치되었다. 학생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었고, 구청은 예산을 만들어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 교원으로 인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깨닫는다. 이보다 더 기쁜 변화가 어디 있을까.
“장애는 저에게 평생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육아로 많이 체감하고요. 하지만 교사로서는 장애가 교육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인 교육이라는 걸 얘기할 때 결국 교사의 전인적인 모습이 교육의 재료가 된다는 것인데, 장애도 그렇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거죠. 우리 학교가 장애를 어떻게 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시설을 개선하거나 소통 방식을 바꾸고, 지원의 통로를 다양화하는 것들이 교육의 재료가 되는 거죠. 단순히 장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어요.” 장애가 평생의 과제라 말하면서도 장애에 매몰된 삶은 불행하지 않겠냐 되묻는 그는 직업인이자 교사로서 장애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불편함은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장애를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왔다.
“저 혼자서 하는 일은 없어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어서 함께 하는 겁니다.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지금은 아이를 키우면서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제 노력도 중요하지만, 활동 지원사님도 필요하고, 지역사회의 도움도 필요하거든요.”
이제 막 육아 휴직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그는 휴직 동안 협업의 중요성을 몸소 경험했다고 말한다.

함께 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헌용 교사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쉽게 지나치고 마는 명제에 다다르고 만다. 교사로 15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겪었을 고단한 이야기도 유쾌하게 풀어내던 그가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우리 학생들이 저에게는 동네 주민이기도 한데요. 곧 여름방학이 시작될 텐데,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하고, 그 시절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