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동 가족 관련 영화로 예전에 자주 추천되었던 작품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인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조니 뎁의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어
지금도 언급되고는 한다. 다만, 이 영화는 장애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엇갈릴 여지가 있다. 장애인이 중심이 아니라 그의 형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니 그레이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18살 지적장애인으로
온갖 말썽을 부리는 골칫덩어리다. 아버지는 일찍 자살하고,
어머니는 무기력하게 집안에 은둔하는 터라 어니를 돌보는 맏형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는 가장 역할까지 해야 한다. 장애인인
어니는 길버트의 삶의 힘겨움을 더 가중시키는 셈이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당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장애인 가족의
삶을 보여주었기에 진일보한 작품으로 평가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정작 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은 놓친 면이 있다. 동생 어니의 장애로
형 길버트가 한층 성장하는 서사는 이 영화가 누구의 관점을 더
투영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만든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처럼 영화 ‘그녀에게(2024)’ 또한 장애인
가족의 삶을 보여 주는데,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의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엄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 제목
‘그녀에게’는 수많은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를 뜻한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 만큼, 장애 아이의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제목을 통해 시사하고 있다.
주인공 상연(김재화)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신 소식에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쌍둥이 임신이었다. 쌍둥이 양육이 쉽지는
않겠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두 아이라서 감당할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둘째 지우가 지적장애 판정을 받게 되자 상연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조차 힘들어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장애가 있는
아이란 시련과 고통의 원인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로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갈등도 그녀를 힘겹게 한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고군분투하던 상연은 예전에 외면했던 학교 선배이자 장애 엄마
선배에게서 여러 대처 방법을 일러 받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특수 학교보다는 통합 학교에 다녀야 발달 속도가 나아질
수 있다는 조언에 따른 것도 그러한 방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 그리고 학교 측과의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며
녹록지 않은 현실과 마주한다. 영화는 교육 현장과 제도의
불합리성과 교육 주체들의 편견과 냉대를 다루는 것은 물론 장애
등급제(현재는 폐지되었음)와 같은 복지 제도의 모순을 파고든다.
의료기관에서 발달 장애 2등급을 맞추기 위해 언어 구사를 못하는
지우에게 6점을 부과하는 대목은 이를 잘 보여 준다.
과거에 장애인의 삶을 피상적으로 간주하고 심지어 시위 현장조차
피했던 상연은 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에 부딪히며 많은 것을
목도하고 깨닫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해
나가고, 어느새 후배 기자가 장애아 엄마가 되었을 때 자신이 체득한
내용들을 다시 전해주는 멘토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아이의 장애가
엄마로서의 성장은 물론 인간적 성장을 부여해 주는 장치인 셈이다.
‘그녀에게’는 장애 아동 가족의 현실과 어려움을 부각하고, 나아가
장애 아동 엄마에게 도움을 줄 여지가 많다.
다만, 이 영화에서 지우의 모습은 거의 정면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장애 당사자의 생각과 관점은 작품의 초점이 아니다. 지우는 단지
작품 속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면서 엄마의 현실 자각과 깨달음
그리고 성장 서사의 장치이자 조건으로 활용된다. 지우는 자폐
스펙트럼과 지적 장애가 같이 나타나는데, 장애 이해에 관한 연출과
구성은 거의 포착할 수 없다. 엄마를 포함한 가족의 현실과 삶과
함께 장애 아동을 좀 더 면밀하게 반영하는 서사 구조가
병행되었다면, 더욱 좋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영화
‘말아톤’(2005)에서 어머니의 양육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가족
갈등, 사회 구성원의 편견과 제도의 불합리를 더 부각하면서 정작
초원이를 배제한 셈이 되었다. 즉, 당사자주의가 더 진화해야
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서사를 적절히 균형 잡히게 할 수는 없을까.
동반 성장 스토리도 생각해 본다. 어머니까지 타계하고 길버트와
어니가 다시 삶을 위해 떠나는 결말의 ‘길버트 그레이프’도 이러한
관점에서 리메이크하면 적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