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겨울호 VOL.305

VOL.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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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각

서로의 다름이 만든 공존의 이야기 - 할리우드와 국내 영화를 중심으로 -

글. 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 교수,
문화콘텐츠학 박사)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주)NEW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에 등장한 다양한 인물을 통해 ‘장애’를 결핍이 아닌 또 하나의 개성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살펴본다. 스크린 속에서 달라진 ‘다름’의 의미와 공존의 가능성을 함께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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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결핍이 아닌 하나의 개성이며, 삶을 살아가는 데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또한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며 함께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하게 하기도 한다. 영국의 낭만적인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1999)은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와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의 로맨스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두 사람 이외에도 중요한 인물이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지체장애인 벨라(지나 맥키)이다. 유명 배우인 안나 스콧과 서점 주인인 태커는 오해로 헤어지게 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벨라의 도움으로 둘은 헤어지지 않게 되는데 안나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호텔에 들어가야 하지만 호텔 측은 사전 예약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벨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호텔 평가를 하려 합니다. 우린 일행이고 이 호텔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글을 쓰겠습니다.” 이 발언의 당사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벨라이기에 호텔 측은 들여보냈고 태커는 안나와 오해를 풀고 사랑을 맺어가게 된다.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충분히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장애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찾을 수 있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었다. 애초에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할 때 벨라를 태우지 않고 출발했는데 벨라가 타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일행이 벨라의 휠체어를 접어 싣고 그녀를 옆자리에 태우고 간 것은 그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적 활동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는 더 있다. 영화 ‘선샤인 클리닝’(Sunshine Cleaning, 2008)은 자매가 생계를 위해 특수 청소업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애인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청소 용품 가게 주인 윈스턴(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이다. 윈스턴은 절단장애인이다. 한쪽 팔이 없지만 청소용품점을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는 팔이 없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한 손으로 손님이 주문한 물건을 찾아 집어오고 능숙하게 계산한다. 그는 청소업에 초보인 두 자매에게 여러 도움을 주고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한다. 단순히 물적 지원이나 노하우뿐만 아니라 멘탈이 흔들릴 때 잡아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 누구도 그를 영화 속에서 장애인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남들이 기피하는 범죄 현장·고독사·자살 주거 공간 같은 특수 청소 업무에서 윈스턴이 노련함을 갖추게 된 것은, 사람들이 꺼려 온 일을 묵묵히 맡아온 시간이 쌓였기 때문이다. 한쪽 팔이 없는 그는 오히려 자신의 조건을 이유로 삼지 않고 이러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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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형이 다른 이들의 상호 협력도 생각할 수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임 댄싱’(Inside I'm Dancing, Rory O'Shea Was Here, 2004)에서 로리(제임스 맥어보이)는 근육장애인, 마이클(스티븐 로버트슨)은 뇌병변장애인으로 둘 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두 사람은 성격과 태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둘은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되고 어려움을 해결한다. 로리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보이고 마이클은 사유적이고 질서 준수의 경향이 있다. 마이클의 탈시설을 로리가 가능하게 했고, 로리는 마이클 때문에 안정적인 밸런스를 얻어 독립생활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영화 ‘마이티’(The Mighty, 1998)에서는 좀 더 직접적인 상호 보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학업에 느린 자폐 스펙트럼 소년과 신체 성장이 멈춘 모르키오 성향의 소년이 우정을 담은 성장 버디 영화로 알려져 있다. 몸이 퇴행하는 케빈은 보조기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데, 맥스는 어디를 가든 케빈을 무등 태워 다닌다.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따돌림이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 않고, 불의한 상황을 마주하면 당당히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각자 혼자 있다면 일어날 수 없는 변화였다.
이런 상호 보완의 관계성을 보이는 작품은 한국 영화에도 있다. 신하균, 이광수 주연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다. 이 작품은 단지 허구적인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십여 년을 한 몸처럼 지내온 지체 장애인 최승규와 지적 장애인 박종렬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더 각별했다. 머리를 쓰는 세하(신하균), 몸을 잘 쓰는 동구(이광수)는 상호 장점을 잘 살려서 어려운 일을 헤치며 독립생활을 해나가는데 혈연 가족보다 더 잘 해낸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장애가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지혜와 삶의 방편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장애를 결핍으로 바라보지 않게 만든다. 장애는 각자의 개성으로 서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삶을 영위하는 힘이 되며 공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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