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편중의 시대
글. 김동현 판사

공감의 시대이지만, 공감 능력은 줄어
바야흐로 공감의 시대다. 어디에서나 공감을 강조하는 말들이 흘러넘친다. 역설적으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보다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줄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관계의 단절일 것이다. 예전에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알았고, 아이를 맡기거나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지금은 이사 온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간혹 마주치는 정도로 짐작만 할 뿐이다. 반면 온라인에서의 관계성은 더욱 확장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 어느 곳에 사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다. 두 공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는 내 마음대로 그만두기 어렵지만,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버튼 하나로 가볍게 끝난다. 애초에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알아서 찾아주기도 한다. 싫어도 부대끼며 얻을 수 있는 공감 훈련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사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불편하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로 일할 때 나는 사람들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피해자들과 종일 상담을 한 날에는 기를 쪽쪽 빨린 채 퇴근하곤 했다. 늘 남의 나쁜 일을 접하고 사는 직업은 공감할수록 본인이 더 힘들다. 방어 기제가 작동해 공감 능력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감정과 상황을 알고 대응하려면 공감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필수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당사자에게 공감하지 않으면 권위나 논리만으로는 당사자를 설득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처음 받았을 때부터 고민되던 사건이 있었다. 불화로 가출한 원고가 어머니와 동생을 상대로 아파트를 돌려달라는 사건이었다. 판결은 모 아니면 도.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절차에서 양쪽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원고는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나오지도 않았다. 패소하면 집을 나가야 하는 피고들의 긴 하소연이 시작되었다. 그 사건은 재판부가 바뀌고서도 조정기일을 두 번이나 더 열었지만 결국 합의가 되지 않아 판결로 결론을 내야 했다. 법률적으로는 소유자의 편을 들 수밖에 없어서 원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했다. 그렇지만, 의외로 피고는 항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하느라 애쓰신 부장님께 감사 편지가 도착했다. 경청하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나름 빛을 본 것이다.
공감 능력, 자신에게 달린 일
우리는 연습을 통해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더 많은 공감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그 변화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 다리를 다쳐 한동안 휠체어를 타던 친구는 의식하지 못했던 작은 턱 하나가 얼마나 넘기 어려운지 느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고 어렵지 않게 주인공의 상황에 처한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주인공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최근 <더 글로리>를 보면서 초반에는 고데기로 내 몸을 지지는 듯한 느낌에 진저리쳤고 후반에는 달콤한 복수의 희열을 느꼈다.
그렇지만 공감한다는 것이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선동가들은 이를 이용한다. 마음을 잘 읽고 교묘하게 특정 방향으로 행동하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적에 대한 분노라는 가장 단순하고 폭발적인 감정에 대한 공감은 그들이 즐겨 쓰는 무기다. 편향된 공감에 빠지면 편 가르기에서 혐오와 배제, 전쟁에 이르기까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공감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공감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작용이지만, 사람은 자기와 가깝고 비슷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공감한다. 내가 속한 집단 외부의 사람과 공감하려면 의식적으로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집단 내의 쉽고 편한 공감은 차고 넘친다. 그동안 묻혀왔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공감하려고 노력해 보자.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보답은 모두가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다.
* 김동현 판사는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다. 에세이 《뭐든 해 봐요》 저자로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