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 Korea Disabled people's Development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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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

생각의 발견

먼 나라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때

글. 류승연 작가
people DRAMA
과거와 현재의 나

장애 인식 전환 교육 또는 장애 이해 교육, 가끔은 인권 교육이라고도 불리는 자리에 나가 강단에 서면 막막한 심정이 드는 순간이 있다. ‘장애’나 ‘인권’에 대해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그렇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異) 세계’에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들에게 장애는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남의 일’이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불쌍하니까 돕고는 싶다.’가 아마 솔직한 심정이랄까. 처음으로 이런 관점을 지닌 이들의 호의를 받았을 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당황했다. “아들(자폐성 장애)과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나?”. 당황한 다음엔 화도 났다. 하지만 이내 화는 갈 곳을 잃었으니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어땠던가. 어느 날 장애인이 입으로 그린 그림이 새겨진 물건을 샀다.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불쌍한’ 장애인을 위해 돈을 썼다는 흡족함이 들었고 ‘착한’ 일을 한 내가 기특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착한 일을 한 나’가 주체라는 것이다. 장애인 화가의 굿즈는 그런 내 착함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장애인의 엄마’가 되고 나서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과거의 나와 같은 관점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다음 단계에선 그런 호의는 호의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 어쩌면 그런 호의마저도 절실한 현실 아니던가. 현실과 타협하는 수밖에. 그런데 요즘, 살짝 욕심이 생긴다. 콘텐츠 강국인 대한민국에 근본적 장애 인식 변화를 기대해 볼 만한 어떤 바람이, 움직임이 읽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으로 이동하는 ‘장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으로, 장애인이 등장하는 공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장애’가 흥미를 끌기 위한 소재로 이용돼버린 영화도 있었고 의미 있는 관점을 투여한 좋은 작품도 있었지만 ‘극장 상영’이라는 물리적 접근성 때문에 확장성(대중적 접근)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사람들은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그래서 시작 전부터 소파에 앉아 브라운관에 집중한다. 장애 인식 변화를 위한 대중적 접근이 필요하다면 드라마만 한 게 없겠거니~ 하며 늘 아쉬워하고 있던 차, 3년 전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을 만났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이다. 극 중 김수현의 형(오정세 분)을 자폐성 장애인으로 설정하면서 자폐성 장애에 대한 자연스러운 접근과 더불어 비장애 형제자매가 겪는 어려움까지 아주 잘 담았다.
그게 신호탄이었나 보다. 2022년은 ‘장애’가 대중성을 확보한 최고의 한 해가 되었으니 전국적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다운증후군 화가 은혜 씨가 직접 출연해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선 주인공 4명 중 한 명으로 휠체어에 탄 하늘이가 출연하기 시작했다(주인공 모두 실제 사람이 아닌 인형이다). 접근성이 쉬운 브라운관에서 고정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통해 장애를, 장애인을 만나는 횟수가 빈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일타 스캔들>에선 전도연 동생 역의 재우(오의식 분)가 자폐성 장애의 일환인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나왔다.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보다 <일타 스캔들>에서 장애인을 그려내는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천재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판타지보다 평범한 장애인을 주변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담아낸 관점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 26일 공개되는 JTBC 드라마 <나쁜 엄마>의 보도자료를 보니 검사 아들(이도현 분)이 한순간의 사고로 아이가 되어버린 후 엄마(라미란 분)와 함께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힐링 코미디라고 한다. 드라마가 시작한 게 아니어서 어떤 내용일지 알 순 없지만, 만약 줄거리대로라면 <나쁜 엄마>는 장애를 ‘먼 나라 남의 일’로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장애는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일로 말이다.

내 문제로 인식해야 공존 가능해

그렇게 내 일이 되고, 내 주변 일이 돼야 장애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바뀐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동일시’가 돼야 비로소 내 문제로 인식하고, 내 문제가 돼야 수혜적 관점에서가 아닌 일상에서의 자연스러운 공존이 가능해진다. 내가 바라는 이 사회의 궁극적 장애 인식 변화는 여기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인권 의식이 발전한 것인지 아니면 콘텐츠 강국에서 창작자들이 새로운 소재를 찾아 헤매다 보니 ‘장애’까지 몰려들어,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브라운관에 부는 새로운 바람에 내 마음은 즐겁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사람들 속에 ‘장애’가 일상적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 언젠가 나는 아들을 놓고 먼저 늙어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미디어 콘텐츠가 그런 방향성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한 요즘, 아주 조금이지만 예전보단 확실히 살맛이 난다.

*류승연 작가는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엄마이다. 신문사에서 국회를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으나 아들이 자폐성 장애가 되면서 복직하지 못하고 ‘장애아의 엄마’로만 살다가 세상 속에서 아들과 함께 잘 살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 책과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배려의 말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