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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한 편의 시, 무대 예술이 되다

‘그 집 모자의 기도’ 연극팀

김용우 감독, 배우 이찬호, 임지윤, 김종우

글. 박성혜 + 사진. 홍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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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용우 감독, 배우 김종우, 임지윤, 이찬호
그 집 모자의 기도

김대근

마을에서 제일 볼품없고 초라한 집
지은 지 오래되어 기둥 몇 개가 벌레 먹은 사과처럼 썩어 가는 집
예순 넘은 어매와 손발을 쓰지 못하는 서른 넘은 아들이 사는 집
어매는 집 앞 작은 텃밭에 강냉이, 물외, 애호박을 심어
아들의 입을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집

마을에서 제일 비바람에 약한 집
무서운 태풍이 불어오던 어느 늦여름 밤 음산한 빗물들이 마루 위로 기어들고 있었네
깜짝 놀란 어매는 아들을 깨웠고 아들은 어매 먼저 나가라고 소리쳤네
어매는 사람들을 데리러 나갔고 하나님을 믿지 않던 아들은 기도했네 ‘살려 달라’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빨리 사람들을 보내 달라’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빗물이 방으로까지 기어들고 있을 때 어매와 젊은 남자 한 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네
업혀 나가며 아들은 하나님께 원망했네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그러나 아들은 몰랐네
그가 기도를 했던 시간에
그의 어매도 기도를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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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무대 예술이 되다

2022년 9월 열린 장애인문화예술축제 A+Festival에서 ‘詩(시)풀이-그 집 모자의 기도’라는 공연을 선보였다. 이 공연은 단순히 한 편의 시 낭송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첼로 연주, 웹툰, 연극, 무용으로 들려주고, 보여주며 다양한 풀이 방법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을 다양한 문화 장르로 재해석한 공연으로 대학로 혜화동을 지나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으며 성황리에 마쳤다.

‘그 집 모자의 기도’ 시는 중증의 뇌병변장애인 김대근 시인이 경험한 사건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물난리 상황에 중증 뇌병변장애인 아들을 구하려는 노모와 자신이 물에 쓸려가기를 기도하는 장애 아들의 안타까움을 담은 시로 장애인 재해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전체 공연을 연출한 현대무용가 김용우 감독, 배우 이찬호, 임지윤, 김종우 씨를 서울 광진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네 사람의 얼굴이 마치 봄 햇살을 머금은 것처럼 밝아 보였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습실 공간을 채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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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재해 상황을 보다

많은 시 중 왜 ‘그 집 모자의 기도’였을까 궁금했다. 김용우 감독은 “이 시는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님이 추천했습니다. 김대근 시인의 작품은 재해 상황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해주는 시입니다. 장애인의 재해 안전권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낯선 도전이었지만, 하나의 주제를 갖고 음악, 미술, 연극, 무용으로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장애 예술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각자 창작의 해석 영역을 넓혀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현대무용가이기도 한 김용우 감독은 자신이 생활처럼 하는 ‘무용’과 비교해 설명을 덧붙였다. “무용은 만들어서 보여주는 걸 고민한다면, 연극은 표현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 표현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임지윤 배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연락했습니다. 극본과 기획을 맡아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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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 출연진, 시대를 뛰어넘다

장애 배우, 연출, 작가이기도 한 임지윤 씨는 이번 작품에서 연출·극본·연기를 담당하며 일인 다역을 소화했다. 역할이 많았기에 고충도 많았을 것 같은데 실제는 어땠을까?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이 따랐습니다. 시를 새롭게 창작해야 했고, 시의 흐름으로 인물 간의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데, 과연 인물의 성격을 다 보여줄 수 있을지, 연극의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하고 말입니다. 연극의 특성을 보여주는 데 신경을 많이 쏟았던 것 같습니다. 소품이나 의상 준비도 게을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집 모자의 기도’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60~1970년이다. 극에서 아들 덕수 역할을 맡은 장애 배우 김종우 씨에게 있어 시대에 따른 감성적 차이를 어떻게 표현해낼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2023년을 살아가는 MZ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의 장애인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당시 장애인들은 자신의 존재가 마치 짐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을 잘 묘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팀 구성원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풀어나가려고 했습니다.”

‘어매 어디 가노?’ ‘우리 얼라~’ ‘강냉이도 해줄까?’ 등 극은 경상도 사투리로 진행되는데 여기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임지윤 씨는 “사투리 쓰는 부분이 많아서 남자 배우들이 힘들었을 겁니다. 제가 고향이 대구라서 녹음해서 들려주기도 했고요.” 길지 않은 공연이지만, 사투리까지 연습하느라 힘들었을 두 배우에게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덧붙여 이번 극본을 쓰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자주 사용했던 표현, 말투, 행동이 자신이 엄마 역할을 소화하는 데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인터뷰 전날 열심히 운동했다는 이찬호 배우에게 이유를 물었다. “극 중에서 제가 아들 덕수를 엎는 장면이 나와요. 천천히 도는 것이기는 하지만, 업고 몇 바퀴를 돌아요. 덕수를 업고 연기를 잘해야 하니깐, 일단 체력적으로….”하며 종우 씨를 바라본다. 극에서도 종우 씨와 궁합을 자랑하는 데 실제에서도 매한가지인 듯하다. 연극 전 시 낭송도 하고, 이웃집 사람 역으로 연극에 참여하지만, 분량이 많은 것은 아니다. “제 분량은 적지만, 극에서 제가 필요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길고 비슷한 단어가 많아 헷갈리기도 하지만 낭송과 역할 모두 잘 소화하고 싶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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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장애인의날 기념식에서 공연 펼쳐

이들이 다시 모여 연습하는 이유가 있다. 오는 4월 20일 우리 원이 주관하는 제43회 장애인의날 기념식에서 공연을 선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공연에서 6분 정도로 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행사 당일 KBS를 통해 중계된다고 귀띔하니 종우 씨가 놀라는 표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한 자신감이 차 있다는 걸 안다. 김용우 감독은 “장애인의날 기념식에서 연극 공연을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짧은 공연이지만 예술의 한 장르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공연이라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공연을 접하게 될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작은 텃밭을 가꾸고 애호박을 넣은 된장찌개로 식사하고 강냉이를 간식으로 먹는 순간이 늘 우리에게 있다. 그 순간을 맞이하는 우리가 모두 안전하기를. 이들의 연습 장면을 보며 우리가 모두 살아가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으로부터 안전하게 하나 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