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 Korea Disabled people's Development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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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다시, 시작

글. 홍유진 (경기도 고양시)

길었던 코로나 시국이 어느 정도 소강 국면에 접어들자 다시 수영장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3년 만에 받는 수영 강습이 어찌나 재미있고 행복하던지요. 코로나 이전에는 수영장이 매일 문을 여는 건 당연한 거지, 이게 그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거든요. 다만 문제는 다시 일상 회복이 되면서 강사 수급이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대부분의 수업이 폐쇄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강사님들은 다른 일을 찾아 떠나셨던 게지요. 코로나가 남긴 상흔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서히 강습이 채워지더니 올 초부터는 수준별 수업이 제법 개설되었고, 저는 중급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영은 혼자 하는 것보단 선생님의 코치를 받으며 훈련하는 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니까요. 새로운 젊은 남자 선생님은 아주 열정이 넘치는 분이었어요. 몸소 시범도 보여주시고, 개인별로 자세도 봐주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지요. 특이한 점은 혀 짧은 소리를 낸다는 거였는데, 가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알아듣기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뭐래?”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수군거리기 일쑤였고요. 선생님은 자기 목소리가 작아서 회원들이 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혀 짧은 발음 그대로 볼륨만 높였습니다. 그 때문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회원들은 귀가 아파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건의할 사항이 있어 회원이 말을 해도 자기 말만 한다거나 못 들은 척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때문에 용기 내어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졌던 회원들도 “에휴, 또 못 들으셨구나” 하고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답변 듣기를 포기해야 했지요.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열성적으로 수업을 잘 이끌어주셨기에 수영 강습은 만족스러운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 중급반 수업을 듣다가 저는 상급반으로 올라가게 되었답니다.
마지막 수업을 듣는 날,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어 수업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려는데 제 목소리를 못 들으셨는지 그냥 지나쳐가시더라고요. 이날은 저도 왠지 오기가 생겨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살짝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시며 “아아, 네.” 하고 그제야 저를 알아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저 오늘 수업이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인사드리자, 선생님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받아주시더라고요.
“아이고, 제가 더 감사하죠. 제가 약간 청각장애가 있어 소리를 잘 못 들어요. 그동안 제 수업 들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 그래서였구나. 청각장애가 있다는 말을 듣자 그간의 오해가 한 번에 해소되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선생님이 회원들 말을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한다며 뒷담화를 나눴던 게 미안해졌습니다. 이 선생님이 다른 강사님들보다 유독 열성적으로 가르쳐주셨던 것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따뜻한 계절이 다가오니, 수영장은 요즘 인산인해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일상에서 저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문을 연 수영장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수영 연습을 하는데, 옆 레인에서 들려오는 중급반 선생님의 열정 가득한 큰 목소리가 정겹습니다. 우리 모두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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